소녀만화 히로인은 헌신계에서 미움받는 인물로?
히트작을 연발시킨 소녀만화 편집자가 시대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Sho-Comi 편집장 하타나카 마사미 씨 인터뷰 원문 링크
"소녀만화는 각각의 시대를 사는 여자아이들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소학관 'Sho-Comi' 편집장을 맡은 하타나카 마사미 씨다.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부터 여성도 평범하게 일할 수 있게 된 현재. 소녀만화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까요?
■ 결혼은 '해피엔딩'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
──최근에 옛날에 읽었던 소녀만화를 읽었더니 놀랐어요. 소녀만화에서 고등학생 때 사귀었던 남녀가 몇 년 후 결혼한다는 최종회가 많은 것 같아서 말이죠.
중학생 때 첫사랑을 하고 있을 적 읽게 되는 것이 소녀만화이고, 첫사랑이란 10대 아이들한테는 일생일대의 일이니까요. 그건 지금도 변함없이 일정한 비율로 나오고 있습니다.
──결혼하면 주인공은 거의 대부분 전업주부가 되어서 확실히 옛날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대학에 보내주지 않거나, 만족스럽게 일을 못하는 시대가 확실히 있었네요. 결혼이란 그런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던 때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혼 엔딩이 많이 나왔던 거 아닐까.
지금도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확실히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이 골인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시작으로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이야기가 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옛날에도 웨딩이나 결혼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결혼이란 '해피엔딩'이 아니라 '시작'. 결혼한 '뒤'를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니게하지(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라든가가 그렇네요.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 골인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의.
그렇네요. <가정부 나기사 씨>도 지금에 나올 법하네요. '여성이 집안일을 해야만 한다'같은 고정관념을 벗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성도 남성처럼 일할 수 있게 되어서, 여성 측에서 '신부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같은 생각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당연한 것처럼 여성이 해왔던 집안일을 아웃소싱하면 무언가가 변할 거예요.
──일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에서도 90년대 즈음에 존재했던 OL만화와는 꽤 분위기가 변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 세대의 작품에선 일하는 여성은 '일하는 자기 자신을 남자 쪽에서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라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작품이 많았어요. 이건 실제 사회를 반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현재 10대는 '남자에게 질 수 없다'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네요. 여러 선배들이 평등을 쟁취해왔기 때문에 생긴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면 평범하게 일하는 흐름으로 가지요.
맞아요. 일하는 것이 보통이 됐으므로 반골정신같은 것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성별 때문에 보상받지 못한다'보다 '일할 때는 남자친구에게 신경 써줄 수 없다'같은 고민이 현실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봐 선생님, 그거 모르지?>는 만화가 여성과 미용사 남친의 이야기입니다만, '바빠서 LINE 답장을 할수가 없는' 묘사가 매우 리얼해요. 바빠서 연락이 밀리는 것이 '너무 헤픈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일이 끝나지 않을 때 남친이 기다려줄 때, 별로 상대를 해줄수가 없지만 힘내서 일하고 있으니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같이 말이죠. 이런 건 쇼와의 남성들이 여자들에게 원했던 것입니다만(웃음). 이 작품을 읽고 기분이 좋았던 사람이라면 평범하게 힘내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만화 안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여자아이들
──소녀만화에 나오는 남성상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예전 만화엔 백마탄 왕자님같은 존재도 있었습니다만, 최근엔 여러 남자아이들이 상대역으로 나오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멋있는 사람=좋아'만이 아니게 된 것 같네요. 최근 몇 년동안은 다정한 남자가 인기있는 것 같은 경향이…….
──속박하는 남자라든가, 도S남자같은 게 인기 있을 것 같은데도요?
장르로서는 인기 있습니다만, 도S가 유행이었던 건 꽤 옛날이네요. 뭐라고 해야하나, 독자들은 남자를 따르는 주인공은 좋아하지 않아요. 도S남자에 대해 헌신하는 여자보다도, "뭐야 저 녀석!?"하며 대항하는 타입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헌신하는 것만이 사랑을 쟁취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게 되었다는 건가요?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위해 밤을 새서 도시락을 만드는 느낌, 쇼와 때 유행한 아밍의 '기다릴 거예요'같은 '헌신계' 히로인은 별로 볼 수 없게 되었네요.
하지만 사실 남자아이들은 그런 정성을 다하는 여자아이를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일까요?
남자가 좋아하는 만화에 나오는 여자는 기본적으로 '미션걸'. 노력해서 미션을 달성하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주는 여자아이가 인기예요.
──구체적으로는?
옛날이라면 <터치>의 아사쿠라 미나미라든가, <도라에몽>의 시즈카라든가.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뭐 먹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뭐든 좋아"라고 말하기보단 "최근 교자에 빠져있어"라든가 "바닷가에서 대합 먹고 싶어"라며 과제를 주는 아이.
──미나미가 말한 "고시엔에 데려다 줘"라든가?
맞아요. 소원을 들으면 '이 과제를 클리어하면 그 아이가 기뻐해줄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 '당신이 가고 싶은 장소라면 어디든지 갈 거예요'같은 느낌은 아니네요.
──'헌신계'는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네. 그런데도 여성 측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그에게 맞추는 편이 낫다'라는 생각에 치우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좋아하는 사람이 축구부니까 매니저가 된다'같은 내용이 대표적이네요. 이런 선택은 완전히 남자 쪽에 맞춘 거니까요.
근본적으로 '남자에게 정성을 다하는' 여자아이가 주류였고, 그런 편이 사랑스러웠고, 헌신하는 게 행복한 거라는 선입견이 강했어요. 하지만, 점점 여기에서 벗어나고 있네요. 예를 들어 지금 Sho-Comi에서 연재중인 <청춘 헤비로테이션>에서 그런 변화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부분이 그런가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왕도 프레임이긴해요. 하지만 부활동을 선택할 때 주인공은 좋아하는 남자에게 '나는 응원부에 들어갔는데 같이 들어가지 않을래?'라고 권유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입으로 말하게 되었어요. 이건 시대변화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같은 욕구를 입에 대는 요즘같은 히로인과 "~에 데려다줘"라고 말하는 미션걸은 주체성이 있다는 점에서 조금 비슷한 걸까요.
그렇네요. 그래서 남녀가 안고 있는 '이상적인 여자아이'의 갭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미션걸과 최근의 히로인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남성의 종속적 존재라는 자의식의 유무'가 아닐까요… 미션걸의 "데려가 줘"라는 말 자체에선 종속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랑대는"것 처럼 보인다든가요.
조금 거칠게 말하면 그렇네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요즘 독자들에겐 '남성의 손을 잡아당겨준다', '남성을 북돋아준다'같은 갇힌 생각은 보이지 않아요. 물론 예전부터 있었던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메이저라기보단 장르 중 하나라는 느낌입니다. 여자아이를 그리는 방식이 다양해졌어요.
──여자아이가 고백하는 소녀만화도 자주 보이는 느낌입니다.
그렇네요. 매우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마탄 왕자님을 계속 기다리는 것이 아닌, 자기가 찾으러 간다거나 손을 내밀고 기다리기도 합니다. 수동적이고 착한 캐릭터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요.
■ '미움 받아도 좋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주인공
──혹시 90년대에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 유행한 것도 있어서 요즘 독자들이 당연하게도 싸우는 소녀를 봐왔던 영향일지도 모르겠네요. 여자아이도 싸우는 것이 보통이라고 해야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세일러문>은 지금도 매우 인기 있고, 거기서 파생되어 여자아이가 강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회의 변화와 함께 여자아이의 기호도 바뀌어왔을지도 몰라요.
──소녀만화의 연애에 이런 변화는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요?
사실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고 생각합니다만, 메이저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된 건 2-3년 정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능동적인 히로인'이라 들으면 명랑 쾌활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능동적이라함은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태도입니다.
예를 들면 '혼자 있고 싶어'하는 히로인도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네요. 이런 캐릭터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7-8년 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0대-20대 전반 젊은 작가들은 자주 '혼자가 좋은' 히로인을 그리고 있네요.
──앞으로 흥할 것 같은 히로인형은 있나요?
이미 유행하고 있는 장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론 '미움받아도 좋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히로인이네요. 예를 들어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 <전문중적진천천>의 주인공은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하여 세간의 관습과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갈등을 낳지만 일부 등장인물에게는 열렬한 지지를 받는 역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인기인 <사이코지만 괜찮아>나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얌전하고 눈치를 보는 여성은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 작품이라면 <하메후라(오토메 게임의 파멸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영애로 환생해버렸다...)>가 있겠네요.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하지는 않는 히로인이군요.
그렇죠. 예전엔 '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거지'라며 고민하는 유형이 주류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은 '나는 미움받고 있는걸, 어쩔 수 없네'부터 시작하는 느낌이 듭니다. '성격이 나쁘다'라고 자신부터가 그렇게 생각하는 주인공이 인기가 생길지도 모르겠군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의지를 표명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거니까요. 모두에게 사랑받기 보다는 자신을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든가.
지금까지 현실세계에도 만화의 세계에서도 남자아이는 뭐든 자신이 정해야만 하고 여자아이를 이끌어 가야만 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 하에 일을 진행하는 것은 언뜻 보면 자유롭게 보이지만 괴롭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괴로움 안에서 여자아이가 자신의 소망을 말해주고, 심지어 권유해주는 것은 남자아이한테도 기쁜 일이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남녀 각각 목표해야하는 이상이 일치하지 않아 교합이 나빴다고 생각합니다만, '능동적인 히로인'이 늘어난 것을 보면 이 갭이 사라지는 게 뚜렷한 시대가 됐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소녀만화도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수동적이지 않은 히로인'의 활약은 남자아이가 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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