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 스타즈 (BURIED STARS)
2020년 7월 30일 발매, 라인게임즈 개발
* * *
모든 내용 포함한 감상. 스포일러 주의▼
- 8월, 클리어한 직후에 다른 곳에 짤막한 감상을 몇 번 올린 적이 있는데 그 감상을 복붙(...)하면서 지금 시점에 맞게 보완해서 올림. 그때랑 감상이 별로 달라진 게 없으므로...
- 추리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 어드벤처 게임. 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진상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어땠는지 이야기해본다면...
1회차 시작하면서 스마트워치를 강조한데다, 작중 기능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설명을 할 때부터 워치가 범행 트릭에 강하게 엮일 거라는 걸 예상했음. 특히 녹음한 걸 벨소리로 설정 가능하다고 설명해주는 부분에선 어라?함. 작중에서 여러번 스마트 워치를 조작한다고 해도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처음부터 짚고 넘어가주는 게 보통은 아니라서...
- 규혁이는 시작부터 너무 진범상이었다... 한도윤에게 제일 호감을 표시하는 것도 그렇지만 비주얼과 성격이... 네... 이런 캐릭터가 진범인 게 제일 재밌으리라는 건 아직 먹히는가봐요. 2차 창작에서도 규혁이와 도윤 커플링이 제일 인기 많을 것 같았고, 예상대로 둘이 제일 흥하는중. 1회차 엔딩에서도 규혁이가 과하게 자기 탓하는 것도 너무 자기 진범이라 광고하는 것 같았다. 라이터는 딱히 숨길 생각이 없었던 듯.
- 애들이 서혜성이 40분에 올린 페이타에 너무 집착하는 걸 보고 범인이 조작했겠지 뭐... 했더니 정말 그랬다.
- 장세일은 주영이와 도윤이가 마스터키 찾으러 무대로 간 사이 인하랑 규혁 둘 중 한 명이 죽일 것 같긴 했고 뜬금없이 마스터키를 주장한 규혁이가 수상하긴 했는데... 이때부터 규혁이에게 나도 모르게 정이 가서 현실부정 하고 싶었던 듯. 진범상이지만 진범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규혁아! 모드... 너무 뻔하면 오히려 그러지 않길 바라게 된다는 게 이건가 싶었다. 하지만 또 장세일 뺀 4명이 다시 모여서 분장실 박차고 들어가기 전에, 장세일이 한 번 대답을 했으니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라고 굳게 믿고 있어서 아직 스마트워치에서 강조했던 녹음 기능이 안 나왔으니 그거 쓰면 되는 거 아니야...? 했는데 네... 정말 녹음->벨소리가 주요 트릭이었습니다...(짜식)
- 인하랑 주영이가 의심이 안 갔던 건 아니지만 진범일 경우 다른 의미로 실망스러웠을 것 같다. 왜냐면 '커뮤니케이션' 게임인데 주인공과 인하, 주영의 커뮤니케이션은 그리 극적인 변화를 동반하지 않았음. 뭐 만약에 진범이었다면 규혁-도윤같은 관계성을 부여해줬을지도 모르지만 난 인하와 주영이 이 게임에서 차지하고 있는 포지션이 꽤 만족스러워서 여캐 취급에 대해 큰 불만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실망스러울 거라 생각한 것. 하지만 동시에 규혁이가 진범상인 걸 부정하고 싶었기에 내 안에서 여캐 두 명이 범인일 가능성도 내내 생각해봤던 것 같다; 장세일 사건의 경우 스탭 복도 쪽 분장실 문이 사실 열려있었다!로 가정해서까지 추리를 해봤는데... 네 역시 진범상이 진범이었습니다.
- 진범의 범행 동기는 후반부 동기 찾는 창 열릴 때까지 예상을 못했고(대충 엄마 때문인가?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신피디의 전작과 유추는 못함), 도윤과 하나하나 순서를 배치해보면서 알게 됨.
- 이런 식으로 등장 캐릭터들의 말에서 모순을 찾거나 구석진 곳에서 증거를 발견하기 보다는 정황적 키워드들로 배치를 하는 게 이 게임의 진행 스타일. 대화로 얻은 키워드가 수십가지가 되는데 그런 시스템이 빛을 발하진 않았던 것 같다. 키워드 대부분을 페이터와 인물들 대화에서 얻게 되는데 한도윤 혼자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대화에서 아예 새로운 정보를 얻기 보단 신뢰도 하락과 상승을 신경 써야했기에 더 피곤했다.
- 시스템은 플레이하면서 트위터에서 엄청 불평불만을 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직접 확인은 못함. 스킵이 느리고... 아니 스킵이 아니라 그냥 빨리감기 수준이고. 멀티엔딩+수집 게임인데 세이브 슬롯도 적고, 아무튼 2020년 게임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스템이 불편했음. 차기작은 보완해서 나오길 바란다...
- 멀티엔딩에 대해선... B루트까진 흥미로웠는데 C루트는 공포감 이전에 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고 이런 호러 루트보단 메인 스토리의 다른 가능성을 보고 싶었음.
-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여기까지 말하고, 작중 서사 구조에 관해서.
게임 하기 전 사전정보를 거의 보지 않았다. 주요소재 정도는 알았는데, 그게 오디션 프로라는 걸 알고 처음엔 거부감이 먼저 생겼다. 그도 그럴게 이 게임은 옛날부터 기획된 것이긴 해도 옛날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고 최근엔 불법 조작까지 터지지 않았는가. 요즘엔 트로트도 그렇고 또 시동 거는 중인 것 같지만. 어쨌든 제작진의 소위 악마의 편집이라 불리는, 도의를 상실한 연출, 불법 조작, 갑자기 대중에게 노출된 일반인들이 일으키는 여러 사건사고, 제작진에게 놀아나는 후보자들과 대중들. 오로지 시청률만을 노린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에게 질리고 질린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머지않아 이 소재 선택에 납득했다. 가면을 지니고 있는, 무언가 숨기고 있는 캐릭터들. ‘악마의 편집’의 피해자, 제작진의 이미지 메이킹에 따르는 출연자. 그 짜고 치는 고스톱 안에서 진정한 자신과 마주보기보단 타인이 보는 이미지를 신경 쓰는 인물들. 가면을 쓴 캐릭터들의 배경으로 우리나라 오디션 프로는 아주 적절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베리드 스타즈'고 이건 작중 오디션 프로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베리드(Buried)'란, 작중에선 파묻힌 재능을 이끌어낸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베리드 스타즈'에서 파묻힌 건 재능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주체적 자아라는 이중적 의미가 내포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출연자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자아가 파묻혀진다. 베스타는 이 아이러니를, 트루엔딩에서 다시 역전시킨다.
- 그런 의미에서 한도윤의 “배신자”라는 설정의 빌드업은 상당히 괜찮았다. 대중은 전부 욕을 하지만 실상은 다른 출연자들의 좋은 이해자이며 선의를 추구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이었으니. 이렇게 한도윤의 “배신자” 이미지는 알게 모르게 희석되어갔다. 페이터에서 시비를 거는 계정들에게 강하게 반박한 것도 한 몫했다. "그래, 역시 한도윤은 배신자가 아니야".
- 그렇게 조금씩 희석시키며 같이 올라갔던 멘탈 수치는 이규혁의 “너는 배신자가 아니다”라는 말에 다시 전복된다.
“난 사실은 배신자였어” 라는 것으로.
주변 출연자들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내심 지키고 싶었던, "배신자가 아니다"라는 이미지는 이규혁이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을 때, 전복되었던 멘탈은 다시 하늘을 뚫으며 파란색 수치가 된다.
거짓에 파묻혀 죽지 말고 네가 살인자라는 진실을 인정해라, 나는 내가 신PD가 제안한 거래를 승낙한 배신자라는 진실을 인정할테니...
플레이어가 내내 신경 쓰며 관리했던 멘탈 시스템에서의 해방은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신과 마주보았을 때 일어난 것이다. 내면의 자신과 마주보고 성장한다는 주제는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 같다.
- 다만, 결국 국민 배신자라며 한도윤이 모든 것을 다 뒤집어쓰는 내용은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고 인류애만 하락시키는 결말이었다. 한도윤은 음악적 소양이 좋은 것처럼 그려진데다 심사위원도 한도윤을 좋게 평가했다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한도윤은 자신이 배신자라는 것은 신PD 둘만의 비밀이라고 했는데, 그럼 뒷공작을 PD 혼자서 했다는 말인가? 이걸 안 심사위원이나, 다른 관계자는 없다는 뜻일까? 현실성도 떨어지고 개연성도 안 맞는다. 어쨌든 한도윤이 오디션 프로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본인 실력도 있었다는 뜻이므로 배신자 낙인 그대로 남아서 대중에게 끝까지 욕먹는다는 엔딩은 불만스러웠다.
우리나라는 (옳고 그름을 떠나) 자칭 실력주의자가 많아서 밴드에서 한 명만 살아남으면 그 멤버를 배신자라 욕하기 보다는 다른 멤버들을 한도윤 한 명만 믿고 버스 타려고 했었냐며 욕할 것이다(...) 한도윤이 실력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악플 중에 도의적 문제로 욕하는 사람만 보이고 실력으로는 아무 말 안 해서 의아했다.
- 위에서 잠깐 언급한 여캐들 취급에 대해. 기본 스탠딩CG의 포즈가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것 빼고는 불만보다는 만족감이 더 앞선다. 애초에 기대를 별로 안 해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금방 긴장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인하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인물들을 통제하는 주영의 역할은 꽤 마음에 들었음. 주영이는 후일담 1번 때문에 그저 멘탈왕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정신을 유지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멘탈왕은 결과론적인 거고 그만큼 노력하기에 후일담 1번같이 잘 안 됐을 경우 무너질수도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
인하도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조마조마하긴 했는데 그런 모습 자체가 오히려 정직함을 뜻하는 거라고 이해했다. 과거 때문에 이름과 외모에 변화를 준 인물이고 방송용 이미지까지 있지만 이런 설정 자체가 사실은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내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그래서 한도윤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아가는 인하가 더 빛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신승연은 그렇게 됐지만 이 사람의 존재감은 끝까지 남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하지만 차기작은 화끈하게 여성 주인공으로 보고싶은 것도 사실이다a 여러 의미로 차기작이 기대된다.
- 아무튼 시스템은 불만이 많았지만 트루엔딩 서사가 꽤 마음에 들었고 후반 CG를 활용하여 터뜨리는 듯한 연출도 좋아서 그 불편한 시스템을 가지고 꽤 열정적으로 파고들기 요소에 들어가 플래티넘 트로피를 땄다. 플래티넘은 전화같은 모든 수집요소를 모으지 않아도 얻을 수 있긴 함. 이 게임을 발판으로 차기작은 더 좋은 작품으로, 더 좋은 성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 블로그 특성상 태그는 일본 성우만 넣긴 했는데 한국 성우들 연기 다 좋았음! 일본어판은 한 두명은 좀 아쉬웠는데 다른 분들은 다 만족.
++) 2021년 1월 17일 추가.
생각해보니 현실적인 무대와 캐릭터 조성을 노린 것에 비해 디테일은 현실에서 묘하게 붕 떠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유가, "현실"을 의식하고 구성하다보니 오히려 장르적 과장성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플레이어 쪽에서 "현실성"을 따져가면서 플레이해서가 아닐까 싶다. 난 페이터의 글 하나하나는 현실 SNS의 말투를 많이 참고했다고 생각했지만 굴러가는 상황 자체는(악플과 옹호 비율이 9 : 1)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고, 막내 작가 사건도 프로필이 그렇게 티나게 바뀐 것 정도는 가볍게 넘어갈 정도라 봤으며(유머글로 화제된다거나 밈이 된다거나) 인물들이 시체 뒤져보고 상황 파악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런 건 장르적 과장성으로 넘어가면 될 문제였다고 본다. 근데 베스타는 데포르메-캐릭터 디자인부터 센스야 그렇다치고 현실 가수들을 참고한 것 같고 바탕이 되는 설정도 왠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기반 위에서 시작해서 쉽게 못 넘어갔던 게 아니었나 싶다. 이런 작품이 가지고 있는 현실성은 플레이어를 쉽게 이입할 수 있는 구성요소이기도 하지만 정말 하이퍼 리얼리즘 수준이 아니라면 판타지성, 과장성으로 덮지 않는 이상 붕 뜨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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