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할 당시엔 정발이 안 된 상태라 일본어판으로 플레이했고, 그래서 제목은 '사이케델리카'라고 쓴다. 한국어판도 사긴 했는데 츠미게 상태.
◆ 진행
베스트 엔딩까진 그저 그랬다. 나비 잡는 것도 터치가 매끄럽게 안 된다는 인상이었고, 플로우 차트에서 쇼트 에피소드를 봐야 그 다음 진행이 가능하다는 건 정말 귀찮았음. 그러다가 대단원 엔딩을 조금 일찍 보게 되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내 취향이었다. '베스트'와 '대단원' 이름의 차이가 와닿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귀찮기만 했던 플로우 차트 시스템도 어설프게 수집욕(?)을 자극하면서, 그리고 봐야하는 쇼트 에피소드가 점점 줄어가면서부터 적응이 됐다.
캐릭터 메이킹이 섬세하다. 현실세계 루트에서 베니유리가 사소한 이야기도 야마토에게 다 말하고 야마토가 그걸 묵묵히 들어줬었는데, 저택에서도 베니유리가 야마토에게 가족 사진을 보여주면서 시시콜콜한 걸 다 말하는데 야마토가 현실세계 때처럼 묵묵히 들어주는 걸 보고 텍스트로 캐릭터성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카게 루트는 스피드왜건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자신의 인생을 구구절절 설명하는데, 작중의 장치들이 깔끔하게 설명되는 건 좋았지만 굳이 이런 방법으로 모든 설정을 밝혔어야 했나 싶었음. 나비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을 베니유리가 보게 되는 것처럼, 조금 더 자연스러웠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다.
◆ 연애게임?
오토메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를 것 같은데, 난 공략 캐릭터가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만 표현이 된다면 그 캐릭터 루트는 성립된다고 보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공략 캐릭터와 사귀고 연애하는 것까지 기대했다면...이 게임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음. 애초에 이 글이 네타밭이라 게임 안 한 사람들은 읽지 않을 것 같지만ㅋㅋㅋ
◆ 이야기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주인공을 포함해 전부 과거에 어떤 형태로든 속박되어 있다. 그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한 걸음 내딛는 이야기.
과거에 대한 후회를 남긴채 미래를 살아갔던 아이들은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이런 생각에 못 이겨 어떤 아이는 아예 그 일을 잊으려고 하거나, 어떤 아이는 상대방을 꾸짖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며 서로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택이라는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공간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속박된 과거의 사슬을 풀어나간다.
여기서 히카게가 추가되면 '검은 나비의 사이케델리카'라는 의미를 더 자세하게 다룬다. 베니유리의 역할이 두드러지는데, 어떻게 보면 제일 과거에 얽매인 인물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왜 하얀 나비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순수하다. 베니유리는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