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번주 금요일에 사서 일주일 동안 꾸준히 달려서 굿엔딩 봤다. 축복 엔딩은 아직 안 봤는데 스탭롤 뒤에 커튼콜 있는 줄 모르고 스킵해버려서 유투브에서 영상 찾아서 커튼콜 보다가 어쩌다보니 축복 엔딩 네타까지 당해버렸다. 종언 보스러시가 상당히 귀찮고 힘들어서 축복 엔딩은 나중에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보게 돼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2. 종언 엔딩 들어가기 전까진 그냥 무난한 게임이었다. 캐릭터 디자인 아주 좋고, 그래픽 좋고, 아기자기한 요소도 많고 액션도 시원시원하니 좋고, 성우도 캐스팅 잘했고 연기 잘하고. 웰메이드의 조건은 다 충족됐다. 이렇게 명작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하면서 끄덕거리며 플레이하고 있다가 종언 엔딩 보고 제대로 뒷통수 맞았다. 그냥 웰메이드 느낌이 아니라 우주 명작이었다. 우주를 뚫었다고!
3. 벨벳 루트까지 천천히, 다소 삐걱거리며 맞춰졌던각 수레바퀴들이 딱딱 아귀가 맞으면서 종언 엔딩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그 느낌이 소름이었다. 예를 들어 오스왈드가 희망을 갖게된 계기인 파랑새가 사실은 그리젤다였다는 점도 개인적으론 충격이었는데, 플레이하며 오스왈드와 관련이 없는 파랑새가 왜 엔델피아에 있는 거지? 오스왈드가 그웬돌린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 너무 억지 설정을 가져다 붙인 거 아냐?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스왈드 금사빠라고 놀리면서 플레이하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 예언의 용이 오스왈드에게 '파랑새를 찾아라'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4. 더 소름 돋았던 건 메르세데스의 최후. 메르세데스가 진명을 '위그드라실'이라고 말하는 순간 온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먼저 죽은 메르세데스의 어머니가 자신의 진명을 말하는 모습과 오버랩 되는데 그 순간 너무나도 먹먹해졌다. 아, 메르세데스 이 짧은 시간에, 심지어 이 순간조차도 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구나... 사실 이미 예언(=결말)을 정해두고 캐릭터들이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 운명이나 예언에 회의적인 나는 이 점을 단점으로 꼽을 생각을 했었는데 깨닫고 보니 내가 이 흐름에 너무 몰입해있었다. 동화책 속의 이야기라는 점이 이런 '정해진 대로 진행'이라는 거부감을 상쇄시켜주는 것 같기도.
5. 오스왈드가 그웬돌린에게 저걸 보라고 말할 때, 그웬돌린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황폐해진 땅이 초록색으로 물드는 연출은 최고가 아닐 수 없다. 오딘 스피어만의 그 아름다운 그래픽이 표현하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가 구원받는 모습과... 동시에 울려퍼지는 음악을 생각하니 또 먹먹해진다.
6. 제일 좋은 캐릭터는 오스왈드지만 자꾸 생각이 나는 캐릭터는 메르세데스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위그드라실 뿌리가 내려가면서 마지막 잉베이가 뿌리에 피어난 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몇 초간 숨을 못 쉬었다... 메르세데스 언젠가는 꼭 행복해지길... ㅠㅠㅠ
7. 아쉬운 거. 다섯 캐릭터로 똑같은 맵에 똑같은 보스를 계속 상대하려니 힘들었다. 그리고 모든 캐릭터가 커플(결말이 어떻든)로 끝나는 건 좋은데 내 본진이 연애게임이라 그런지 좀 더 진한 과정이 있었으면 했다. 벨벳과 코르넬리우스도 처음부터 끝까지 예쁜 사랑을 하는 커플인데 첫 만남 부분이 생략돼서 그런지 감흥이 덜했고, 오스왈드와 그웬돌린은 너무 내 취향인데 맺어지고 끝.... 메르세데스와 잉베이는....말을 말자.
8. 클리어한지 n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에 먹먹함이 남아있다. 한동안 후유증 심하게 앓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