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엔딩과 B엔딩 마지막에서 2B와 9S가 죽였던 기계생명체들의 머리가 반짝거리면서 9S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연출, 인류가 이미 멸망했음을 등장인물과 플레이어 모두가 아는데도 인류에게 정기연락 메일은 그대로 오는 연출, 2B가 오염됐을 때 모든 시스템이 바이러스에 걸린 듯하여 잘 작동이 안 되는 연출(...)
1회차 이후부터 포드 46호와 153호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안드로이드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대화 연출을 시작으로, E엔딩으로 들어갈 때 이 결말을 용납할 수 없다며 스탭롤과 탄막 게임을 시키는 연출.
제일 좋았던 건 서브퀘스트 연출인데, C루트 9S 시점에서 서브퀘 <동포들의 행방>를 달성하면 9S가 달의 눈물이 만개한 에밀의 비밀장소에 가서 꽃 한 가운데에 2B의 검을 꽂고 추모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나리오의 비장함을 배로 표현하는 연출이었음.
그밖에 일일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시나리오의 구멍을 채워주는 수준의 연출이 많았던지라 이 부분에선 나는 부정적인 소리 할 생각이 없다.
아쉬웠던 부분은 시나리오인데...
분명 뭔가 더 있는데, 설명을 안 해주는 시나리오.
메인퀘, 서브퀘 플레이 그 이상으로 추측과 파고들기를 하지 않는 이상, 심지어 게임 밖의 미디어를 보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그리고 내 예상을 벗어난 시나리오라서 살짝 당황했는데, 이 게임은 2B와 9S의 이야기지 인류, 세계, 안드로이드 전체의 이야기가 아니다.
즉, 인류와 세계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안드로이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2B와 9S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요르하 계획도 자세하게 다뤄주지 않음. 소설이나 낭독회를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즉, 처음엔 세계 전체를 다루며 시작했으나 그게 갈수록 좁혀져서 E엔딩 - 2B와 9S의 이야기로 끝난다.
이 이야기에 포드나 A2 등 다른 등장인물이 엮이는 것일 뿐.
"인류에게 영광을"
하지만 그 인류는 없고, 안드로이드만 남아있다.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진 이유는 인류를 위해서이기 때문에 인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드로이드의 사기는 저하되고 삶의 이유를 잃는다.
그래서 인류회의라는 가짜 인류가 만들어지고 이것을 영원히 들키지 않기 위해 요르하 계획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결말이 정해져있는 요르하 타입 안드로이드가 운명에 맞서는 이야기...인데, 정말 운명에 맞선다 그 자체로 이야기를 끝맺음. 그래서?라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
달에 남아있는 유전자 구조는?
다른 안드로이드는 뭐하고 있는데?
그래서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건데?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9S와 2B는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가는 건가?
안 알려줌... 애초에 2B와 9S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에서만 반전이 나오니 사실 인류가 절멸했다는 설정은 그 시점에서 엄청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게임이 집중한 2B와 9S의 관계는...
설명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반전을 정리하면, (게임, 소설, 낭독회)
1. 2B는 사실 같은 요르하 기체를 처리하는 2E였다. (서브퀘에서 E형의 이야기가 나온다)
2. 9S는 스캐너 모델이라 매우 똑똑하고 단독행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2B와 같이 행동하게 되는데, 2B에게 9S가 붙은게 아니라, 2B가 9S에게 붙은 거다.
즉, 2B는 2E고 9S를 감시 및 처형하기 위해 붙어다닌 것. (9S는 스캐너 모델에 매우 똑똑해서 세계의 진상을 알 수 있게 되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3. 2B는 요르하 계획의 실행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이것은 요르하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게 되며 몇 번이고 9S를 처형해왔다.
4. 그리고 이 모든 것을, 9S는 알고 있었다.
2B가 자신을 처형하기 위해 온 것 등등.
5. 2B는 게임 시작 전에 몇 번이고 9S를 처형해왔고, 그럼에도 게임 시작 후에 9S와 같이 행동하게 되며
그런 과정으로부터 9S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 같고,
9S는 외로움을 많이 탔는데 2B와 같이 행동하게 되며 순수하게 기뻤고 진실을 알고 난 후에는 그 감정이 꼬이게 된 것 같다.
아담이 9S에게 사실은 널 2B를 xx하고 싶지? 라고 할 때 그 xx가 무엇이었나 하는 것조차 해석이 많이 갈리는 걸 보면,
9S가 2B에게 품은 감정은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두 안드로이드의 반전이 개인적으론 불친절하게 밝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정을 조합해보면 감탄이 나오면서도, 심금을 울리지는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9S가 2B를 2E라고 알고 있었다는 게 언제부터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는다. 과거회상이라도 잠깐 보여줘야 하는 게 맞지 않았나 싶다. 9S가 언젠가 인류 멸망이라는 진실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2E가 감시로 붙은 것처럼, 그렇게 똑똑한 9S가 언젠가 2E인 걸 알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추측도 할 수 있는데 말그대로 추측만 할 수 있고 게임 안에서 자세히 다뤄주지 않는 게 답답했다.
마찬가지로, 2B가 9S를 몇 번이고 처형했다는 건 소설을 보지 않는 이상 모름...
2B가 A, B엔딩에서 9S의 목을 조를 때 했던 대사만으로 "추측"하기엔 앞서 말한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나는 이걸 소설이나 콘서트가 아닌 게임 안에서 다뤄주길 바랐다.
이렇게 꼬이고 질척거리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뒷설정들이 직접적으로 그려지지 않아서 답답했고 이 둘의 감정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무튼 서사적으론 그렇고, 철학적으로는 생각할 부분이 많은 게임이다.
왜냐면 이 게임은 끝으로 가선 인물들의 결말에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세계 자체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는다.
인류는 절멸했고, 기계생명체들의 네트워크 인격은 우주로 쏘아올려졌다. 요르하 부대를 제외한 남은 안드로이드들은 인류가 절멸한 사실을 모른다.
인류가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기계생명체들이 절멸한 것도 아니고, 안드로이드들이 진실을 알고 답을 찾게 되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지만, 그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 게 디렉터가 전달하려는 핵심일지도 모른다.
엔딩을 본 직후에는 2B와 9S의 관계만 보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인류가 배제된 이야기라는 것에 플레이어 입장에선 거한 현타가 왔는데,
잘 생각해보니 기계생명체들은 인류를 닮아가려고 노력했고, 그중에 아담은 그 인간을 느끼기 위해 죽음을 원했으며, 9S는 인류가 절멸한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을 그리워했다.
인류가 없는데도, 인류는 남아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재생되고 있다.
2B와 9S, 그리고 2A의 생존으로 끝나는 E엔딩은, 인류가 이제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목표따위 이젠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살아감으로써 인류의 궤적을 따라가는 걸지도 모른다.
캐릭터 각자의 입장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주제가 일치하여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훌륭한 게임이라고 느꼈다.